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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법칙

kdsg 2021. 2. 16. 16:01

엄마의 법칙

내 어린 날의 엄마 초등학교를 갓 들어간 내 어린 날의 엄마를 떠올리면 먼저 텅 빈 집이 떠오른다. 학교에서 돌아왔을 때 아무도 없는 빈집의 적막감이라니! 엄마 없는 마당 넓은 집은 아무도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아버지나 형이 있어도 그것은 마찬가지다. 그때 불현듯 엄마가 없을 수도 있다는 것을, 존재하는 목숨이 ‘부재’로 다가올 수도 있다는 것을 몸으로 먼저 느꼈다. 그때까지 엄마는 없을 수 없는, 한 세상의 전부인, 완전한 존재였다. 엄마의 부재는 역설적으로 엄마가 내게 얼마나 귀한 존재인지 알게 해 주었다. 엄마는 할머니가 된 지 오래고 나도 이미 중년으로 들어선 지 오래지만 엄마는 내게 여전히 귀한 존재이다. 만날 그리워만 하고 막상 엄마를 만나면 투정을 부리는 게 전부지만 엄마는 세상에 없을 수 없는, 도저히 대신할 그 누구도 없는, 귀한 존재다. 김륭 시인의 시에서는 찾기 어려운. 요즘 아이의 엄마 요즘 아이들은 엄마를 내 어린 날의 엄마와 같이 귀하게 여길까. 아마도 그럴 것이다. ‘엄마의 법칙’은 다르지 않을 테니까. 그렇지만 그것은 아이가 공부를 하지 않을 때까지만 유효할 것이다. 엄마가 아이에게 공부를 건네는 순간 이미 엄마는 엄마의 법칙에서 벗어난다. “엄마, 아무에게도 보이지 않는 엄마. / 선생님 안경 위에 걸터앉아 / 장난치면 혼난다! 선생님보다 큰 / 목소리로 고함치는 엄마”(「스컹크 - 마마보이는 싫어」). 엄마는 어느새 괴물 같은 존재다. 아이에게 엄마는 세상에 없을 수 없는, 도저히 대신할 그 누구도 없는, 귀한 존재이지만 동시에 괴물이 될 수 있다. 귀한 존재이거나 괴물이거나 아이에게 절대적인 것은 마찬가지다. 우리 시대 아이들의 불행은 많은 부분 여기에서 비롯한다. 아빠도 아이들의 불행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언젠가부터 사라진 / 엄마와 아빠 냄새”(「코의 생각」), “우리는 엄마 아빠가 집에 없을 때 더 재미있다”(「왜 그럴까?」) 같은 아이들 생각은 괴물이 된 요즘의 엄마 때문이다. 김륭 시인의 시에서도 자주 나오는. 김륭 시인의 엄마 김륭 시인의 자의식 속 아이에게는 엄마가 없다. 괴물 같은 엄마가 등장하기도 하지만 김륭 시인의 깊은 자의식에는 엄마가 없다. 세상에 없을 수 없는, 도저히 대신할 그 누구도 없는, 그런 엄마가 없다. 그래서 아이는 “난 기린을 키워. 가끔씩 / 기린이 나를 업어 줄 때도 있어. / 엄마 아빠가 보고 싶을 때마다 / 긴 목을 하늘거리며 우두커니 / 먼 산을 쳐다보고 있는 / 기린” (「기린」)이 되어 외로움을 달래거나 “신발들이 새처럼 날아다니는 꿈속으로 / 엄마 아빠를 초대하고 싶” (「울고 싶은 날」)어 한다. 시인의 자의식 속 아이는 엄마가 없어 상상력으로 세상을 견딘다. 김륭 시인의 상상력이 날개를 달고 자꾸 하늘을 날아다니거나 세상을 전복시키는 것은 이 때문이다. 그렇더라도 엄마의 부재는 너무 강력하여 “가끔씩 두 손으로 / 나를 껴안고 주”(「기린」)며 스스로 다독여야 한다. 그래야 겨우 견딜 수 있다. 그러니 가끔 사막여우처럼 출몰하는 외로움을 어쩔 수 없다. 사막여우 어떤 날은 마음이 풀 한 포기 없는 사막처럼 변할 때가 있다. 우리도 외로워! 입 안 가득 우물거리는 말에 모래가 씹혔다. 거울 속에서 사막여우 한 마리가 어슬렁어슬렁 걸어 다녔다. 새로운 엄마를 기대하며 우리 시대 엄마는 어떤 모습일까. 내가 어렸을 때만 하더라도 세상에 없을 수 없는, 도저히 대신할 그 누구도 없는, 그런 귀한 존재였지만 지금은 공부를 감시하는 괴물이 되어 있다. 또는 부재한다. 그러나 그게 전부일까. 아닐 것이다. 실상 지금 엄마들도 날마다 다른 존재이다. 시간마다 다른 존재이다. 흔들리는, 매번 흔들리며 나아가는 존재이다. 아이들 또한 마찬가지일 터. 그렇다면 우리는 조금 다른 엄마의 모습을 기대할 수 있지 않을까. 현실을 살아갈 수밖에 없지만 그에 대해 고민하고 반성하는, 새로운 현실을 만들어 나가려고 하는, 그런 잠재력을 가진, 새로운 엄마가 있지 않을까. 그런 엄마를 보는 아이가 있지 않을까. 그런 엄마-아이를 보고 싶다.

문학동네동시문학상, 그 의미 깊은 두 번째 성취_ 김륭 엄마의 법칙

문학동네가 지난 2012년 새로이 제정한 ‘문학동네동시문학상’이 우리 동시 문단에 신선한 활기를 불어넣고 있다. 1회 대상 수상작인 김개미의 어이없는 놈 은 상대의 의표를 단방에 찌르며 독자를 매번 무장해제시키는 새로운 캐릭터를 앞세워 기존 동시와는 다른 지점에서 새로운 동시의 맛을 보여 준다 (이안, 다 같이 돌자 동시 한 바퀴 중에서)는 평을 받으며 동시의 독자층 자체를 한껏 넓혔다.제2회 문학동네동시문학상도 1회에 이어 권오삼, 이재복, 안도현 심사위원이 예심과 본심을 진행하였다. 109편의 응모작을 나누어 읽고 함께 읽을 만한 작품 7편을 골랐고, 편차가 컸던 전년에 비해 고루 뛰어난 작품들이었기에 수상작을 선정하기 위한 열띤 토론이 필요했다.

그리하여 2회의 대상은 프라이팬을 타고 가는 도둑고양이 삐뽀삐뽀 눈물이 달려온다 등을 통해 관습적인 상상력에서 벗어나 독자적이고도 인상 깊은 동시 세계를 펼쳐 온 시인 김륭에게로 돌아갔다. 수상작 엄마의 법칙 에서는 한층 무르익은 시인 특유의 기발한 상상은 물론, 공감을 기반으로 그린 여러 존재의 내면들이 자연스럽게 깃들었음을 발견할 수 있다. 심사위원 권오삼은 동화적 서사가 있는 작품, 일상을 동심적인 익살로 풀어낸 작품, 대상을 개성적인 관점으로 표현한 작품 등 시적 묘사의 범주가 넓다는 점을 장점으로 꼽았고, 이재복은 날개를 단 듯 여기 현실의 세계와 저기 상상의 세계를 자유롭게 넘나드는 언어적 형식에 주목했다. 안도현은 수상작을 두고 앞으로 우리 동시가 나아가야 할 어떤 지점을 예고하는 것 같아 반가웠다. 는 뜻 깊은 소감을 밝혔다.

제1부 : 그 애 집 담벼락 위에 얹어 놓은 내 마음처럼
새의 발견 10
해바라기 12
소금쟁이 14
낙타 15
기린 18
고등어통조림 20
눈사람 21
눈사람은 어디로 갔을까 22
책상 위의 개구리 24
키가 작은 아이 25
신발을 찾습니다 26
울고 싶은 날 27
우산 28
찌 30
투명 물고기 32
달과 사과 34

제2부 : 동전 몇 닢에 하늘을 빌려 주는 할머니 덕분에
오리들의 기차 여행 38
염소들의 미술 시간 42
스컹크 44
콩 46
사막여우 50
시험 망친 날 52
구름과 버스 54
고양이 목에 방울 대신 폰을 매달아 준다면 56
살금살금 60
엄마 생각 62
달팽이의 장난 64
지렁이는 우산을 쓰고 66
트램펄린 68
휘파람 70

제3부 : 발밑의 그림자를 생선구이처럼 뒤집으며 놀았지
엄마의 법칙 74
우리 집 왕위쟁탈전 76
양파에게 전화가 왔나 봐요 78
추석 80
봄날 81
고양이 부처님 82
코의 생각 84
1초 86
시간의 얼굴 88
화장실 89
아빠와 수박 90
달팽이의 일요일 92
왜 그럴까? 94
우리 집 고양이는 가끔씩 안경을 씁니다 96
할머니들 98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고민이야 100

해설 | 경계를 넘나드는 날개 달린 언어 - 이재복 1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