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12

인조(仁祖)가 왕에 오른 뒤의 연대기를 살펴보면 [인조반정-이괄의난-정묘호란-병자호란-소현세자죽음] 순이다. 이는 결과 를 중심으로 본 순서이지만, 원인 으로 살펴보면 [광해, 너 싫어-이괄, 너 마저-후금, 너 오지마-후금, 너 오지 말라니까-세자, 너도 싫어] 순서이다. 결국 어진 임금(인조) 은 한 평생 밉고 싫은 놈, 가까이에 오지도 말고 꼴보기도 싫다 고 한 셈이다. 그런데도 왜 인조 라고 묘호를 붙인 것일까? 어디 한 군데라도 어진 면모 가 있었던가? 백성을 도탄에 빠뜨리기나 했지, 당췌 백성을 위무할 줄도 몰랐던 임금인데 말이다. 그래서 박시백은 조심스럽지만 이렇게 짐작하였다. "그 당시 사관들이라고 어찌 인조의 무능함을 몰랐으랴. 하지만 차마 대놓고 임금을 욕보일 수는 없으니 묘호를 극찬함으로써 더욱더 부끄러운줄 알게 하려고 한 것이라 의심한다"고 말이다. 듣고 보니 맞는 말이다. 능양군이 반정의 깃발 을 올린 까닭은 개인적인 복수심 에서 시작하였다. 하지만 이는 광해군의 무도함(?)에 대한 그 당시 사대부들 의 생각과 일맥상통한 면이 있었기에 성공적으로 이끌 수 있었다. 허나 반정 을 하고 나니 할 수 있는 것은 별로 없었다. 왜냐면 당시 국제정세(명청교체기)는 요동을 치고 있었고 하루가 다르게 급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헌데 그 와중에 조선 은 태평한 세월을 맞은 듯이 임금을 갈아치우는 반정 을 벌인 것이다. 그것도 실리 를 추구하며 위급한 불을 끄기 위한 반정이 아니라 오직 명분 을 살리기 위한 아무런 의미도 없는 반정을 말이다. 아니나 다를까. 조선에서 일어난 반정의 결과 는 후금에서도 반가운 상황이 아니었고, 명나라는 더욱더 아니었다. 왜냐면 광해군의 중립(실리)외교 가 후금에게도, 명나라에게도 그리 나쁜 정책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쪽도 편들지 않고 저쪽도 편들지 않겠다는데 이건 입장을 바꿔봐도 옳은 판단이었기 때문이다. 오히려 대놓고 돕겠다고 하고, 적대시하겠다고 속마음을 드러내는 것은 도리어 의심 만 살뿐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명나라조차 반정 이 일어나 명나라를 지성사대하겠다는 말을 1년 동안이나 믿지 않았었다. 후금과 조선이 몰래 손을 잡고 자기네를 속이려는 기만전술 이라 여겼던 것이다. 이럴 정도로 조선 은 정세파악도 제대로 하지 못하였다. 차라리 반정 을 일으키고 나서라도 국제정세 파악을 위해 노력이라도 했으면 좋았을 텐데, 그러기는커녕 오직 존명사대 만 외치고 군사를 키운 것도 아니고 무기나 병력을 키운 것도 아닌, 정말 아무 것 도 준비하지 않았다. 이런 와중에 이괄의 난 이 일어나 그나마 준비되어 있던 국방력 마저 깎아먹는 일이 벌어지고 만다. 그것도 인조 1년 에 말이다. 무능하기로 둘째 가라면 서러워할 선조 도 집권중에 반란 은 없었다. 그런데 인조는 그러한 장악력 조차 갖추지 못하고 왕위에 올랐던 것이다. 이처럼 아무런 준비 나 대비 도 하지 않는 것이 바로 인조의 특기 라면 특기다. 이괄의 난 을 정리하며 한숨 돌리는가 싶더니 곧바로 정묘호란 이 벌어진다. 후금의 침략이 예견된다는 보고를 받았음에도 설마설마 하다가 결국 압록강을 넘어 쳐들어온 것이다. 그나마 후금이 아직은 조선과 전면전 을 벌일 상황이 못되는지라 서둘러 돌아가야만 해서 형제관계 를 확답으로 받는 선에서 마무리를 지을 수 있었다. 물론 피해는 막심했다. 쳐들어오고 돌아가는 도중에 미운 짓(약탈과 방화) 을 했으니 말이다. 그래도 조선은 불만 조차 내비치지 않았다. 자존심을 버렸기 때문에 그러했을 것이다. 그래도 입은 살았는지 툭하면 "한 판 붙자"라고 임금부터 백성까지 내뱉곤 했다는데, 백성들은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매 한가지이니 죽기살기로 해보자는 심정에서 내뱉은 말이겠지만, 임금과 신하들은 정말 아무런 준비도 하지 않으면서 입 으로만 내뱉기 일쑤였다. 정말 무책임의 극치를 보여주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도 정말 전쟁(병자호란)이 벌어질 줄은 몰랐나 보다. 하지만 가도의 모문룡 때문이라도 전쟁은 기정사실이었다. 광해군 때는 그나마 적절한 제압이라도 할 수 있었지만, 명분 만 내세웠던 인조는 모문룡이 설쳐대는 것을 막을 명분 은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냥 가만히 있었으면 하고 바라고 또 바랄 뿐 아무런 조치는 해볼 생각도, 하려는 의지도 없었다. 심지어 조선 백성 을 상대로 살인과 약탈을 저지르는데도 말이다. 그래서 병자호란 은 일어나고야 말았다. 결과는 비참했다. 조선은 후금(이때는 청나라)을 상대로 전투다운 전투도 치뤄보지도 못하고 추위와 굶주림 때문에 항복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군신관계 를 맺고 두 명의 왕자와 척화신하들을 포로로 끌려가는 수모를 당해야만 했다. 그나마 병자호란 은 치욕스럽기는 해도 전쟁의 참화는 막을 수 있어서 명분이 있는 항복 이었다. 그러나 정작 항복하고 난 뒤에 백성을 돌보지 않아 차라리 치열한 혈전을 한 뒤에 패배를 한 것보다 더 치욕스럽게 살게 된 셈이다. 무능한 정부는 백성의 삶을 파탄나게 할 뿐이다. 그래도 희망 은 있었다. 소현세자가 있었기 때문이다. 청나라에 볼모로 끌려갔는데도 시종 당당한 모습으로 조선의 백성들을 위무할 줄 알았기 때문에 백성들 사이에서 동정심 이 피어 오른 것이다. 더구나 적국의 한복판에서 조선의 위상 을 세우는 이는 오직 소현세자 뿐이었으니, 결국엔 청나라도 소현세자 를 항복한 나라의 왕자가 아닌 일국의 왕자 로 대접하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소현세자 도 청나라의 부흥을 눈으로 똑똑히 보며 조선의 부흥 을 설계하는 왕자로서 할 일을 제대로 한 셈이다. 그런데 이런 세자를 달갑지 않게 보는 이들이 있었으니 성리학 이란 낡은 이념으로 머리를 가득 채운 관료와 유생 들이었고, 세자의 아버지인 인조 는 질투심에 눈이 멀어 끝내 아들을 죽이고 며느리와 친손주까지 죽게 만드는 일을 저지르고야 만다. 어찌보면 조선의 유일한 독살설 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증거 는 없지만 정황 은 빼박이다. 직접적인 증거만 없을 뿐, 인조의 말과 행동이 모두 소현세자 일가족의 죽음 을 가리키고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인조 는 전혀 어질지 못한 임금이었다. 극과 극은 서로 통한다고 봐야 하는 것일 정도로 임금으로서는 절대 해서는 안 되는 극악 한 일처리로 결국 스스로 먹칠을 한 셈이다. 하지만 이것이 어찌 인조 한 사람의 탓으로만 돌릴 수 있겠는가. 조선은 임금의 나라 가 아니라 사대부의 나라 였으니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소현세자 가 대통을 이어받았다고 하더라도 끝내 사대부 라는 걸림돌에 걸려 넘어지고 말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소현세자 가 이끌던 조선을 꿈꿔 보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일 것이다. 청나라의 부흥 에 미치지는 않았더라도 조선의 부흥 을 정조때로부터 100년 정도 앞당길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 것은 어쩔 수 없단 말이다. 하지만 우리가 아는 역사는 그렇게 흘러가지 않았다.
300만 독자와 만난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 새로운 출발

조선사가 지식인 문화에 머물고 대중들에게는 아직 생소했던 시절, 조선사로 가는 길목을 시원하게 열어준 책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이 있었다. 2001년을 시작으로 10여 년을 조선사에만 바쳤던 박시백 화백은 방대한 분량과 편년체 서술로 아무나 접근할 수 없었던 조선왕조실록 을 누구나 쉽고 재미있게 볼 수 있도록 만화로 재탄생시켰다. 성실한 고증과 탄탄한 구성, 명쾌한 자기만의 시각을 통해 조선왕조 500년 역사를 생생하게 되살렸다는 평을 받으며 독자층을 넓혀가던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은 완간과 함께 독자의 환호를 받았다. 조선사 입문의 대표 도서로 자리 잡은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은 더 많은 독자와 만나 조선왕조실록 이 명실상부 우리 사회의 필수교양으로 거듭나게 하고자 새롭게 출발한다.

개정판에 부쳐 4
머리말 6
등장인물 소개 10

제1장 반정의 주역들 서인반정 14
김류와 이귀 19
이괄의 반란 25
새 임금의 다짐 38

제2장 정묘호란 전후
가도의 모문룡 46
정묘호란 발발하다 52
강화도에서 57
힘없는 나라의 백성 64

제3장 치욕의 날들
추숭에 힘을 쏟다 72
척화선언 83
눈보라 치는 남한산성 90
항복이냐 항전이냐 99
삼전도의 굴욕 110

제4장 병자호란 이후
항복 이후의 일들 124
파병과 횡의 134
김상헌과 최명길 140
임경업과 정명수 152

제5장 왕의 폭주
당당 소현세자 166
커져가는 의심 171
의문의 죽음 183
잔혹 인조 193
무엇을 하였는가 204

작가 후기 216
인조실록 연표 218
조선과 세계 214
Summary: The Annals of King Injo 225
The Annals of the Joseon Dynasty 226
세계의 문화유산, 조선왕조실록 228
도움을 받은 책들 229

헤겔 레스토랑

파브르 식물 이야기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