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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지고 놀 장난감도 귀하고 학원도 없어 무료함을 달래기 위하여 같은 책을 소리 내어 읽으며 놀던 시절이 떠오른다. 너덜너덜해진 채로 집에 뒹굴던 책을 꺼내들고 책장을 들춰가며 소리 내어 읽다 보면 어느 새 열린 감각은 하나로 모아지고 책 읽는 즐거움에 빠져들었다.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의 뜻 모를 사랑을 담은 소설을 읽다 보면 어느 새 독자는 여섯 살 옥이가 되어 책을 읽곤 했다. “토지 댁 딸내미 책 읽는 소리에 배고픈 것도 잊고 지내겠네. 어찌 그리도 또박또박 책을 읽네. 좋겠어, 자네는.......” 책 읽는 꼴을 볼 수 없다고 푸념하던 이웃의 말을 들으면 더 신이 나서 큰소리로 책을 읽으면서 보냈다. 그러다 어느 순간 소리 내어 책을 읽기보다는 눈으로 활자를 따라 읽으며 의미를 재구성하며 머릿속으로 읽어가 다양한 감정을 낭독 속에 풀어내지 못하는 어른이 되어 밋밋한 삶을 잇고 있다. 우울함을 없애기 위해 노래를 부르는 것처럼 소리 내어 읽기는 오감을 활성화해 마음을 챙기는데 도움을 준다. 명문장들을 읊으며 내면의 나와 또 다른 나가 만나 이야기 나누는 느낌은 지친 삶에 활기를 넣어 삶을 풍요롭게 하는 힘이 있음을 경험으로 안다. 오랜 시간 독자들에게 사랑받아온 작품들을 소리 내어 읽으며 저자가 의미를 부여하며 재해석한 문장들을 따라 읽어가다 보면 어느 새 이지러진 달이 꽉 차올라 빛을 발한다.살아갈수록 나다움을 잃어버리고 타인이 규정한 대로 움직이며 살아가는 것은 아닌지 회의한다. 방부제 버무려진 간편식을 한 끼 대용으로 섭취하는 젊은이들을 보면서 오세영 시인의 ‘햄버거를 먹으며’ 일부가 떠올랐다. ‘햄과 치즈와 토막 난 토마토와 빵과 방부제가 일률적으로 배합된 아메리카의 사료를 먹고 있다.’ 주린 배를 채우기에 햄버거를 먹었지만 이내 허기가 지는 역설은 전통음식이 낳은 정겨운 밥상의 소중함을 일깨운다. 한없이 퍼주면서도 더 주지 못해 안달하는 박제가의 연암을 향한 우정에 진한 눈물이 흘러나왔다. 가난한 박지원이 빈 호리병에 술을 가득 채워 달라는 부탁에 박제가는 연암의 건강을 해치는 술 대신 엽전 200개를 하인 편에 보내고도 더 못 줘서 안타까워했다.‘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다. 그 섬에 가고 싶다.’ -정현종, ‘섬’ 자신이 누구인지 알기 위해서는 타인과의 관계를 제대로 알아야 한다. 고립된 섬처럼 자리하는 타인과 소통하며 애증을 드러내는 사이 자아 정체성은 분명해진다. 강한 사람에게는 머리를 조아리고 약한 자에게는 갑질을 서슴지 않는 이들의 횡포가 도를 넘어 공분을 사는 일들이 흔한 시대에 인간적인 면모를 간직한 채 사는 일이 어떤 길인지 고민케 한다. 잠들지 않는 강물이 바다로 흘러드는 것처럼 신영복은 ‘담론’에서 낮은 곳과 함께 하는 연대의 의미를 일깨운다. 지금 여기에 함께 있음을 선물로 여기며 뜨거운 연대로 외롭고 쓸쓸한 이들을 사랑하는 길은 진정어린 관심에서부터 시작될 것이다. 작은 활자로 깨알 같이 쓰인 삼중당 문고의 글을 읽는 재미에 빠져들던 시절이 있는 이들에게 장정일의 시 ‘삼중당 문고’는 반가움이 더할 것이다. 독자 역시 여고시절 수학 시간 교과서 안에 문고판 책을 끼워 선생님이 온 줄도 모른 채 읽느라 등짝을 얻어맞은 적이 있었다. 가벼운 마음으로 읽기 시작한 책들이 뿜어내는 여운은 가슴을 채우고 마음을 살찌우며 책을 가까이하며 소리내어 읽는 동기로 작용했다. 급변하는 시대·가속화 시대에 명문장을 낭독하며 내용을 곱씹어 의미를 새김질하며 무뎌진 감성을 일깨우는 일상을 잇는다면 우리 삶은 더 풍요로워질 것이다.
낭독은 나뿐만 아니라 타인의 삶까지 어루만지는 훌륭한 치유법이다. 아름다운 문장을 소리내어 읽는 한, 우리는 아직 건강한 영혼의 주인공이다 이 책은 아름다운 우리말로 빚어낸 우리시대 최고 문장들을 소리내어 읽음으로써 얻어지는 수많은 유익을 체험하게 한다. 좋은 문장을 소리내어 읽으면 ‘귀 기울이는 자아’가 탄생하여 ‘소리내어 읽는 자아’와 대화를 나누고, 그와 더불어 사물을 바라보고 만지고 느끼는 예민한 감성이 살아나서 더 깊이 오래 생각할 수 있는 집중력이 올라가게 된다. 그렇게 아름다운 우리말 낭독으로 인해 얻게 되는 환한 기운은 우리의 무딘 감성을 일깨워 내 안의 또 다른 나’를 만나게 하는 멋진 기회를 제공한다. 따라서 아름다운 문장을 소리내어 읽을 수 있는 한, 스스로의 힘으로 세상의 넓이와 깊이를 더하는 건강한 영혼의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다. 낭독의 힘과 가치를 일깨우는 이 책을 통해 누구나 정말로 맑은 영혼의 주인공이 되기를 바란다.

프롤로그_ 내 삶을 바꾸는 ‘소리내어 읽기’의 힘

Part 1. 내가 통과하지 못한 인생의 모든 문지방들
01. 사랑은 보이지 않는 힘으로 내 지친 영혼을 어루만져준다/ 이원, 「사랑 또는 두 발」
02. 우리의 상처로 오려붙인 오색조각보/ 박경리, 김약국의 딸들
03. 지치지도 않고, 백발이 성성해질 때까지, 그대를 생각하는 미련한 나/ 박창학 작사, 정재일 작곡, 「비웃어 주오」
04. 너무 그리워서 차라리 당신을 잊었소/ 김소월, 「먼 후일」
05. 터무니없이 어려지는 이 느낌, 참 좋다/ 김개미, 「어이없는 놈」
06. 살아 있다는 이유만으로 눈부신 당신과 함께라면/ 백기완 작사, 김종률 작곡, 「임을 위한 행진곡」
07. 내가 통과하지 못한 인생의 모든 문지방들/ 추사 김정희, 완당집
08. 알 수 없는 세계를 향한 멈출 수 없는 동경/ 김기림, 「바다와 나비」
09. 허리가 아프니까 세상이 다 의자로 보여야/ 이정록, 「의자」
10. 한 사람이 전화하지 않기에 평생을 뒤척이는 마음/ 최승자, 「기억하는가」
11. 옹기종기 신발이 모인 자리, 사랑이 있는 그곳/ 박목월, 「가정(家庭)」
12. 우리는 걱정이 되어, 정말 걱정이 되어/ 오승강, 「걱정」
13. 개미의 억센 턱도 벌의 무서운 독침도 없는데/ 손광성, 「달팽이」
14. 금방이라도 그 사람이 문을 열고 뛰쳐들어올 것만 같은데/ 황지우, 「너를 기다리는 동안」
15. 그렇게 쉽게 나를 잊지 말라고, 그렇게 쉽게 나를 버리지 말라고/ 한용운, 「군말」
16. 인생은 살기 어렵다는데, 시는 이다지도 쉽게 쓰여지다니/ 윤동주, 「쉽게 씌어진 시」
17. 참으로 몹쓸 그 사람이건만/ 박제가, 「김용행에게」
18. 이토록 아름다운 마음의 거문고가 있어/ 김삿갓, 「들판의 주막에서 괴로이 마시다」

Part 2. 기다림조차 눈부신 사랑을 위하여
01. 정욕이란 본래 아름다운 것임을/ 박완서, 「마른 꽃」
02. 이토록 여린 마음, 이토록 조심스러운 마음이 세상을 바꾼다/ 정채봉, 「들녘」
03. 하염없는 것들이 참 좋은 날/ 목성균, 「부엌궁둥이에 등을 기대고」
04. 일부러 뜯어본 주소 불명의 아름다운 편지/ 진은영, 「일곱 개의 단어로 된 사전」
05. 당신을 되찾을 수 있다면 어떤 모욕이라도 견딜 수 있을 텐데/ 기형도, 「빈집」
06. 당신의 그늘이 한없이 고마운 날/ 문태준, 「산수유나무의 농사」
07. 고개 떨구고 터덜터덜 걷다가, 무려 다보탑을 줍다니!/ 유안진, 「다보탑을 줍다」
08. 찾아다닐 필요가 없어요, 당신의 향기는 절로 퍼져 나갈 테니/ 장일순, 김익록 편, 「마음의 향기」
09. 그대나 나나 얼마나 엄청난 존재인지요/ 장일순, 김익록 편, 「출세」
10. 누군가의 아름다운 핑계가 되고 싶다/ 김탁환, 혁명: 광활한 인간 정도전
11. 사랑하는 당신, 생색 좀 그만 내시지요/ 송덕봉, 「유희춘(柳希春)의 부인 송덕봉(宋德峰)의 답장」
12. 열무 삼십 단을 이고 시장에 간 우리 엄마/ 기형도, 「엄마 걱정」
13. 우리는 같이 병들었는데, 마침내 서로 구제했으니/ 이규보, 「벼루에게(小硯銘)」, 이규보, 「부러진 책상에게(續折足?{銘)」
14. 내가 나를 들 수 없는 무거운 발, 발도 고향에 가고 싶죠/ 최문자, 「발의 고향」
15. 그날을 위하여, 은쟁반에 하이얀 모시수건을 마련해 두렴/ 이육사, 「청포도(靑葡萄)」
16. 내 차례에 못 올 사랑인 줄은 알면서도/ 이상, 「이런 시」
17. 기다림조차 눈부신 사랑을 위하여/ 황진이, 「동짓달 기나긴 밤을」

Part 3. 반짝이는 대바늘이 보송보송한 이불호청을 찌르는 소리
01. 딱 한 가지 억울했던 그 일을 일러바치고, 엉엉 울고 싶은데/ 정채봉, 「어머니의 휴가」
02. 마음의 안방을 내어주다/ 김선태, 「마음에 들다」
03. 내 아픔보다 부모님의 안부가 걱정될 때/ 이안눌, 「편지를 부치며」
04. 너의 노래가 좋았다, 멀리 있으니까/ 진은영, 「그 머나 먼」
05. 뒤따라 그에게로 달려가야 옳았다/ 박태원,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
06. 선생님 몰래, 교과서 사이에 끼어 읽었던 그 책/ 장정일, 「삼중당 문고」
07. 그렇게도 그립던 갯냄새/ 오영수, 「갯마을」
08. 그는 내 생의 국물이고 나는 그의 국물이었습니다/ 신달자, 「국물」
09. 반짝이는 대바늘이 보송보송한 이불호청을 찌르는 소리/ 정영주, 「삼솔뜨기」
10. 한지같이 맑은 당신 영혼만이/ 이성선, 「소포」
11. 연대는 물처럼 낮은 곳과 함께하는 것/ 신영복, 담론
12. 그는 아내에게 가는 길을 알지 못한다/ 이상, 「날개」
13. 그 외로움이 모여, 그 헛헛함이 모여/ 이용악, 「하나씩의 별」
14. 그 불완전함조차도 매력적인 사람/ 정약용, 「혼자 웃다[獨笑] 」
15. 마음을 쉬는 것이 보약보다 나을 때/ 이색, 「기심을 내려놓다[息機]」
16. 한 글자를 쓰기 위해 인생 전체를 돌아다보다/ 한승원, 추사

Part 4. 끝내 붙잡지 못한 것들, 여전히 목메이는 것들
01. 그래도라는 섬에서 그래도 부둥켜안고/ 김승희, 「그래도라는 섬이 있다」
02. 당신의 꿈을 찍어주는 카메라가 있다면/ 강소천, 「꿈을 찍는 사진관」
03. 끝내 붙잡지 못한 것들, 여전히 목메이는 것들/ 백석, 「흰 바람벽이 있어」
04. 아주 조금만이라도 당신의 몸을 돌봐주시면 안 될까요/ 정효구, 「몇 사람의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
05. 초콜릿이 살짝 묻은 꼬랑지가 남을 때까지/ 천운영, 「눈보라콘」
06. 잊혀지고 작아져서 마침내 사라지는 법/ 홍윤숙, 「마지막 공부: 놀이 9」
07. 말하지 않아도, 말보다 더 짙은 향기로 전하는 마음/ 김소운, 가난한 날의 행복
08. 왜 우리 감나무만 감이 안 열린당가/ 박노해, 「해거리」
09. 소리내어 읽기, 우리의 무딘 영혼을 일깨우는 몸짓/ 김기택, 「수화」
10. 막음날 내 외로운 혼 건지기 위하여/ 김영랑, 「독(毒)을 차고」
11. 주머니라 쓰고 어머니라 읽는 이유/ 박남희, 「나는 가끔 주머니를 어머니로 읽는다」
12. 잡힐 듯이 잡힐 듯이 잡히지 않는/ 한정동 작사, 윤극영 작곡, 「따오기」
13. 돌아와주오, 그 손톱 끝 봉숭아 지기 전에/ 박은옥 작사, 정태춘 작곡, 「봉숭아」
14. 해맑은 거문고 소리, 검푸른 칼 기운/ 서영수합, 「겨울밤 책을 읽으며(冬夜讀書)」
15. 가슴속에서 불꽃놀이가 시작된다/ 작자 미상, 「최고운전」
16. 세상의 모든 시끄러운 소음들로부터 당신을 지켜주는 노래/ 윤석중, 「기찻길 옆」


Part 5. 아무리 힘든 일이라도 오늘만은 다 잊고
01. 오직 나 혼자만 아는 예쁜 오솔길/ 박완서, 「예쁜 오솔길」
02. 담 너머로 그녀를 훔쳐보던 잘생긴 총각/ 박완서, 「속삭임」
03. 그 외딴 섬으로 반드시 노저어 가자/ 정현종, 「섬」
04. 안개처럼 아련하게 피어오르는 슬픔/ 김승옥, 「무진기행」
05. 내가 나 자신을 연구하지 않으면 다른 자들이 나를 연구하니까/ 박노해, 「자기 삶의 연구자」
06. 아무리 힘든 일이라도 오늘만은 다 잊고/ 이미륵, 압록강은 흐른다
07. 잃은 것 없이 서운한 나의 마음/ 변영로, 「봄비」
08. 샛별이 등대란다 길을 찾아라/ 윤극영, 「반달」
09. 모든 죽어가는 것들을 온몸으로 바라본다/ 직지
10. 날 두고 가는 님은 가고 싶어서 가느냐/ 영화 「서편제」
11. 아직 아무것도 아니었던 나의 20대를 떠올리다/ 안현미, 「거짓말을 타전하다」
12. 내 볼기 놀려 무엇 한단 말인가, 매품이나 팔아 먹세/ 흥보가
13. 이걸 먹고 요걸 먹고 어이 빨리 나으란 그 말씀이지/ 구상, 「비의」
14. 복숭아빛 뺨에 버들잎 눈썹, 초록 저고리에 다홍치마/ 이옥, 「심생전」
15. 이토록 완벽한 시적 울림이여/ 양사언, 「태산이 높다 하되」
16. 거문고 품에 안고 후회는 하지 않으리/ 이희사, 「만음(漫吟)」

Part 6. 나를 잘못 간직했다가 나를 잃어버리고 말았으니
01. 당신은 내 슬픔을 반드시 알 터이니/ 김종직, 「당신을 떠나보내며」
02. 부엌, 아궁이, 그리고 가마솥의 추억/ 김서령, 「부엌」
03. 동그랗게 감귤은 뭔가를 포옹하고 있습니다/ 채호기, 「감귤」
04. 하늘을 우러러 한 글자도 후회없는 글을 쓰려면/ 정병욱, 「잊지 못할 윤동주」
05. 남겨두었습니다, 제일 좋은 건 님 오시는 날 따다주려고/ 서정주, 「시론(詩論)」
06. 나를 잘못 간직했다가 나를 잃어버리고 말았으니/ 정약용, 「수오재기」
07. 오랫동안 그분들 손시려웠을지 몰라/ 김남조, 「옛 연인들」
08. 내년 대추 익을 때까진 살지도 못할 거면서/ 이달(李達), 「대추 따는 노래」
09. 이날 이때껏, 나는 무슨 기쁨을 바라 살아왔던가/ 윤동주, 「참회록」
10. 알면 알수록 아름답고도 놀라운 사람/ 성대중, 「청성잡기(靑城雜記)」
11. 사료와 음식의 차이는 무엇일까/ 오세영, 「햄버거를 먹으며」
12. 이토록 아름다운 거절이 있을까/ 연암 박지원이 초정 박제가에게 보낸 편지, 초정 박제가가 연암 박지원에게 보낸 답장
13. 엄마의 집밥 한 그릇만 뚝딱 비울 수 있다면!/ 정진규, 「몸詩 66 -병원에서」
14. 나그네의 뱃속은 텅 비어 있었을 텐데/ 박목월, 「나그네」
15. 알싸한 그리고 향긋한 그 내음에 나는 그만…/ 김유정, 「동백꽃」
16. 흐르지 않고는 목숨일 수 없음에 나는 강물입니다/ 이해인, 「강」

부록_이 책에 수록된, 소리 내어 읽기 좋은 아름다운 문장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