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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백민석 작가의 <파산세일>이란 단편소설을 읽고 받았던 신선한 충격이 기억난다.정말 쇼킹하다는 표현으론 부족할 정도로 도전적이고 감각적이고 전위적이며 엽기적인 작품이었다. 이후 <목화밭>과 <파산세일> 두 단편이 합쳐져서 <목화밭 엽기전>이라는 놀라운 장편소설이 출판됐다.그리고 어느 시점엔가 회오리처럼 등장해 문학판을 휩쓸던 이 작가는 사라졌다.아팠다는 얘길 들었는데,이 작품이 사라지기 직전의 그 작품인가보다.사라졌다 다시 재등장해서 내놓은 <혀끝의 남자>는 봤는데, 어째서 이 작품을 놓쳤을까, 책을 보면서 그런 생각들을 했다. 작가가 뭘 쓰려고 하는지도 잘 모르는 상태에서 썼다고 고백한 것처럼, 이 작품을 읽으면서 내내 든 생각은 작가의 무의식적인 내면이 일관되게 경험된다는 것이었다.아무도 주목하지 않았을지도 모르는 아주 평범한 어떤 문장에서한참을 맴돌기도 했다. 어줍잖게도 작가에게 연민 비스무리한 감정들을 느꼈기 때문이었다.그리고 조금 더 나아간 어떤 문장에서는 내 내면을 마주한 것 같은 기분도 들었다. 사람과 소통하지 못하고 인형과 소통하는 주인공자기자신 대신 개를 죽이는 여자아이폐허, 망가진 것들, 무너진 곳에서 생명력을 느끼는 여자아이를 낳고 싶은 남자시선이 닿는 모든 곳이 규격화되어있는 서로에게 무관심한 아파트와 또다른 종류의 잔혹함을 보여주는 시골마을의 외딴 농장. 서사 중심의 소설은 아니라, 누군가에겐 지루하고 누군가에겐 난해하겠지만또다른 누군가에겐 공감되는 소설, <죽은 올빼미 농장>.

1990년대 한국문학의 뉴웨이브를 이끌며 새 문을 열었던 백민석 작가의 중편소설 내 어렸을 적 친구는 앵무새들을 키우며 살았네. 울타리도 없는 이상한 집에서. 인공의 자연에서 나고 자란 인간의 성년식한국 현대소설사에서 독특한 위치를 점하고 있는 중편소설의 의미와 가치를 되살려 오늘날의 독자들에게 단편의 미학과 장편의 스토리텔링을 다시 선보이고자 소설향 시리즈 중에서 5편을 골라 특별판으로 출간하였다. [소설향 특별판]으로 출간된 죽은 올빼미 농장 은 1990년대 한국문학의 뉴웨이브를 이끌며 새 문을 열었던 백민석 작가의 중편소설이다. 이 작품은 아파트먼트 키드의 내면적 성장소설로, 작가는 ‘죽은 올빼미 농장’을 동원하여 아파트먼트 세대의 황폐한 내면을 보여준다. 죽은 올빼미 농장은 아파트먼트 키즈가 성년식을 치르는, 통과의례로서의 장이며 작가가 아파트가 곧 자연인 이 세대에게 생기를 불어넣기 위해 차린 장소이다. 작가는 착각과 환상에 사로잡힌 ‘손자’의 죽음이 허물어져 폐허가 된 또 하나의 죽은 올빼미 농장이며, ‘인형’에게 조언을 구하고 ‘자장가’에 집착하는 주인공 역시 언제 손자처럼 자멸할지 알 수 없음을 암시한다. 주인공에게 죽은 올빼미 농장의 의미를 일깨워주는 존재는 대학 동창 ‘민’이이다. ‘민’은 주인공을 현실로 귀환시키는 영매이자 안정과 휴식을 상징하는 새로운 타입의 고향이다. 주인공과 30년을 함께해온 ‘인형’은 그래서 죽은 올빼미 농장의 들샘에 수장되고 만다. 세상에 대해 머뭇거리고 비껴가던 기형적 삶의 방식으로부터 비로소 벗어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 소설은 주인공을 쉽게는 놔주지 않는다. 주인공은 터널을 빠져나오는 길 위의 택시 안에 있으면서 끝없이 어딘가로 달려가 주기를 바라고 있기 때문이다.